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화면에 메시지가 톡 떠올랐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식사하러 가시지요."라고 바로 옆에 있는 컨설턴트가 메신저로 보내온 것이었다. 갑자기 실소(失笑)가 터졌다. 왜냐하면, "5분 후에 나가자." 라고 답신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데 말로 하면 될 것을 굳이 메신저로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을까? 한참동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 웃지 못 할 촌극이었다.

나 말고도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을 것 같다. 불과 몇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직원들이 말로 하면 될 것을 이메일을 통해 업무보고를 한다고 씁쓸한 표정을 짓던 관리자들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관리자는 나에게, "이메일로 보고하는 걸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대일 대화가 가능한데도 그런 걸 사용하는 이유는 '당신과 대화하며 괜히 나쁜 소리 듣기 싫으니 결과만 알고 있어라' 라는 편의적인 마음 때문 아니냐." 며 푸념을 한 적이 있다.

100% 공감이 간다. 이메일, 메신저, 그룹웨어, 지식경영시스템 등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매체는 날로 정교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매체들이 커뮤니케이션의 접근편리성을 증대시켰는지는 몰라도, 과연 조직 내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어느 회사든 진단을 해 보면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이 최소 50% 정도는 된다. 그 때마다 나는 '다 비슷하니까 다른 회사 보고서 슬쩍 베끼면 되겠네.' 라는 얄팍한 유혹에 솔직히 사로잡히곤 하지만, 첨단의 커뮤니케이션 도구 구축에 크게는 수십억 원을 들이고도 의사소통에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하소연하는 까닭이 도대체 뭔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얼마나 멋진 커뮤니케이션 매체를 갖췄느냐가 아니다. 매체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지, 메시지를 조직 내에 잘 통하게 만들어 주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그런 도구들은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도 진솔하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만든다. 오히려 일방적 통보와 지시로 오용될 수 있어 커뮤니케이션을 더욱 경직되게 만들어 버릴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전자결재를 꽤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결재요청을 올리고 나서 상사가 시스템에서 결재해주길 놀면서 기다리다가 제때 안 해주면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며 불평해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관리자는 관리자대로 시스템에서 결재하기 바쁘다. 대면 결재하면 금방 끝날 것을 말이다. 엄청난 낭비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의사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저쪽 부서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직원들이 경영진 생각을 잘 몰라준다며 불평을 쏟아내기 전에, 지속적으로 다른 부서의 업무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지, 직원들의 진짜 생각을 알기 위해 노력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도 노력이 있어야 잘 된다.

즉, 조직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에도 마케팅하듯 해야 한다. 정보 홍수의 시대다. 그래서 자기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메시지이지만 받는 사람은 수많은 정보 중의 하나로밖에 여기지 않거나, 정보에 치여 미처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피드백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따라서 고객 대상으로 PR, 캠페인 등 갖가지 마케팅 전략을 실행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내 생각을 전달하고 필요한 정보를 전달 받으려는 노력을 실천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려면 대면 보고, 간담회, 워크숍 등 다양한 오프라인 활동이 우선되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직접 대면하고 공감하는 만남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패션을 따라가는데 급급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 원칙에 충실하라. 그것이 잘 통하는 조직으로 가는 첩경이다.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고자 반짝이는 화면과 윙윙대는 서버로 된 시스템을 새로 들여올 궁리를 하고 있다면, 그 계획서를 과감히 찢어라. 살 뺀다며 비싼 러닝머신을 사 놓고 몇 번밖에 안 뛰어 보고는 왜 살이 안 빠질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식의 오류를 더 이상 범하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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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타다다다닥' 커뮤니케이션 중?

    Tracked from Sigi Stories 2008/05/08 00:37 del.

    언젠가부터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은 '빠르고, 편하게'로 일축되었다. 동네 수퍼에만 있던 빨간 공중전화기가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타인의 애타는 호출을 확인하고 음성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 공중전화로 달려가던 광경을 지금 세대는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 되었다. '씨티폰'이 길게 늘어선 공중전화의 대기 행렬을 줄여주고, 손에 손에 휴대폰이 들리기 시작하고, 급기야 icq와 MSN으로 시작된 인스턴트 메세징은 이제 하루 일과 중에서 결코 빼 놓을 수 없는..

Comments

  1. 와.. 2008/05/07 21:09

    글 잘 읽었습니다. 아직 직장생활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공감가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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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유정식 2008/05/07 23:48

      고맙습니다. 직접 이야기해도 될 걸 메신저를 더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더군요.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느낌을 좀 받습니다.

  2. BlogIcon 지민아빠 2008/05/08 00:16

    저 같은 개발자들의 경우 열심히 모니터 쳐다보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면 고개를 돌려야 하기 때문에 방해가 된다던가.. 귀에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일하고 있다던가 하는 이유로 메신저로 말걸어 주는 것을 선호합니다만..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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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유정식 2008/05/08 12:11

      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겠죠. 하지만 주객이 전도돼서는 안되겠지만요. 근데 저도 '지민아빠'입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3. BlogIcon 재회# 2008/05/08 01:01

    에고.. 상황에 대한 적절함과 매너만 갖춘다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도구이긴 한데. 주객전도의 경우가 근래에는 많이 보이네요.. 비슷한 의견 트랙백 남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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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유정식 2008/05/08 12:09

      네. 서로 옆에 붙어 있으면서 열심히 메신저로 이야기하면서 키득거리던 사람들을 예전에 많이 봤습니다. 왠지 벽이 느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4. BlogIcon NeZZ 2008/05/08 01:05

    전 회사에서는 대화내용 저장 기능을 통해 많은 혜택을 보아서 자주 이용했지요.. 물론 회사 이름이 커뮤니케이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메신저로 하는 커뮤니케이션때문에 서로 생각하는바에 대한 착오가 많긴 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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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유정식 2008/05/08 12:08

      메신저는 뉘앙스를 담기가 어려워서 간혹 오해를 사기도 하죠. 저도 예전에 메신저를 열심히 했는데, 오해를 사고 난 뒤부터 아예 사용하지 않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5. BlogIcon 니나노 2008/05/08 02:16

    저도 항상 그렇게 옆 자리의 사람과 메신저로 대화하곤 하는데 저만 그런게 아니었군요;
    앞에 댓글처럼 저나 상대방이나 헤드셋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일하기 때문에 그걸 뺐다 꼈다 하는 불편함을 덜고자 하는게 가장 컸던것 같아요.
    그리고 그냥 개인적인 용무로 그 본인 외에 다른 사람이 굳이 듣지 않게 하고 싶을때.. 또 다른 사람들 방해하기 싫으니까..
    말 시키는 상대방이 급한 용무를 보고 있다면 바로 대답하지 않아도 되니까..
    전 참 편리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이 는달까..
    서먹한 사이일수록 메신저로 얘기하면 직접 하는 것보단 부담이 적으니까.. 그렇게 메신저로 친해지면 오프라인에서도 금새 친해지구요. 긍정적인 면도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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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유정식 2008/05/08 12:06

      네. 근데 저는 열심히 일하는데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메시지 창이 좀 성가시더군요. 그냥 바로 말하면 될 것을... 서먹한 사이일수록 직접 이야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야 서먹함을 없앨수도 있구요. 댓글 감사 드립니다.

  6. BlogIcon 마음셋 2008/05/08 09:58

    말씀대로 의사소통하려는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메신저로 사람들을 대하다보면, 정작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방법이 서툴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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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유정식 2008/05/08 12:04

      아무리 세련된 도구들이 많아져도 얼굴 보고 육성으로 말하는 방법을 능가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도구들이 넘쳐나서 얼굴 보고 말하는 법을 잊어가는 건 아닐까 생각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7. 열정과 패기 2008/05/08 11:40

    이런 현상들에 대한 제 생각은 두가지인데 ,
    첫째는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이 경직되어 있을 수록 심화된다는 것입니다.

    업무공간이라는 장소 하에서, 말로 하는 것보다 키보드를 가지고 대화가 가능한 것이
    업무를 하는 것같이 다른 사람에게 보임에 따라 다른 사람 눈치가 덜 보이고
    (일은 하지않고 잡담만 한다든가 하는 우려)
    편해서 하는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둘째는 여직원 (여자라는 특정계층을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만)이 많은 집단일 수록
    그런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그룹대화라던지 일대일 메신져 대화를 통해서 연대감을 느끼게 되는 성향이
    여자일 수록 짙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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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유정식 2008/05/08 12:03

      네. 잡담하는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발견되는 법인데, 그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관리자들이 커뮤니케이션을 경직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8. GrayYellow 2008/05/08 17:11

    저는 오히려 일대일로 꼭 대화를 할려는 사람들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특히 상대방이 바쁜지의 여부는 상관하지도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죽 늘어놓고 가 버리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업무가 전문화 될수록 대화 내용중에 신경을 써서 대답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데 제대로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요. 특히 위사람이 아래 사람을 부를 경우 아무리 초를 다투는 일을 하고 있어도 일단 손을 놓아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저 같은 경우는 아무리 높은 사람이 직접 말을 시켜도 제 일이 끝나지 않으면 기다리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글로 써서 업무를 진행할때는 증거도 남고, 나중에 저장하여 다시 쓸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잇점이 많은 듯 합니다. 가장 좋은 점은 아무래도 제가 틈이 나는 시간에 답변할 수 있고, 한번 더 생각해서 답변을 하니까 즉흥적으로 말로 하는 것 보다는 더 전문적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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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유정식 2008/05/08 21:30

      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대화는 핑퐁처럼 주고 받는 것인데, 자기 할 말만 죽 늘어놓고 가는 사람은 대화를 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메신저는 자기 한 말만 툭 던져놓고 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상할 때가 많은 걸요. 댓글 감사합니다.

  9. BlogIcon 아도라 2008/05/08 18:04

    저도 이전 회사에서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바로 옆 직원이 '언니 밥 먹으러 가요'를 메신저로 하더군요.
    그 다음부턴 제가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낯설어 하더니 나중에는 저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회의 때도 좀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었습니다.
    제가 다른 부서로 옮기고 나서도 그랬습니다.
    다들 메신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나중에 가서는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걸 느꼈거든요.
    단순한 텍스트에는 의도나 감정이 덜 실리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을 많이 감소시켰던 것 같습니다.
    자료교환이나 간단한 업무 지시 정도는 메신저로 신속하게 하는게 좋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서로 눈을 보면 입으로 '말'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하지요.
    다들 대화를 많이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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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유정식 2008/05/08 21:32

      대화를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는 좋은 사례군요. 자연스러운 대화를 권장하는 분위기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댓글을 달면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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