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뢰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신뢰는 크게 일반적 신뢰와 개별적 신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 신뢰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믿을 수 있다는 개념을 말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덕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말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을만하다고 생각합니까?”란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라면 일반적 신뢰가 높다는 뜻입니다.


일반적 신뢰가 높은 사람들은 세상을 무한한 기회가 열린 살만한 곳으로 여깁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이념은 달라도 근본가치는 동일하다고 생각한죠. 또한,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남을 이용하려는 경향이 없다고 간주합니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낙관주의’가 기저에 깔려 있죠.


반면, 개별적 신뢰는 같은 부류의 사람들만을 신뢰하는 것을 뜻합니다. 아주 제한적인 공동체나 자신이 잘 안다고 여기는 사람들만 믿는 것이죠. 개별적인 신뢰를 고수하는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내집단과 외집단을 철저히 구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개별적 신뢰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일베’입니다. 작년에 젖병을 만드는 코모토모에 근무하는 일베 회원이 이상한 인증샷을 올려서 엄청난 사회적 비판을 받았는데, 일베 회원끼리는 서로를 신뢰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일반적 신뢰라기보다는 개별적 신뢰에 불과합니다.


전략적 신뢰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A는 B가 X라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뜻하는데, 남이 당신을 대접하는 것처럼 당신도 그렇게 하라는 뜻이죠. 전략적 신뢰는 ‘타인의 행동에 대한 예측’을 기반으로 합니다. 보통 사회적인 계약 관계에서 전략적 신뢰의 모습이 나타나죠. 전략적 신뢰는 개별적 신뢰처럼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하고만 협력하도록 해줍니다. 전략적 신뢰는 새로운 경험으로 인해 바뀌는데, 그래서 쉽게 무너지기도 하죠.



출처: davidbork.com



우리 사회가 구축해야 할 신뢰는 바로 ‘일반적 신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을 만하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국가와 조직이 잘 운영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죠. 기업 조직에서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믿을만하다’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직원들이 줄어든다면, 그것은 굉장히 큰 문제입니다. 매출과 이익이 감소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죠.


협력하려면 먼저 신뢰해야 합니다. 신뢰가 협력의 유일한 길은 아니지만,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 합의와 협력이 수명이 더 길고 거래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타인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협조적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신뢰하면 매번 새로운 합의와 결정을 거치지 않고도 협력할 수 있죠. 왜냐하면 서로 신뢰하면 각 협상의 출발점에서 장애물을 상당 부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뢰 수준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회단체에 가입하여 사회활동, 봉사활동, 자선활동을 하도록 하면 신뢰가 증진된다고 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단체활동이 신뢰를 증진시킨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원래부터 남을 잘 신뢰하는 사람들이 사회단체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는 것이지, 사회단체 활동이 신뢰를 높이는 것은 아니죠. 신뢰가 선행을 이끌어내는 것이지, 선행이 신뢰를 생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단체활동은 같은 부류의 사람들끼리 교류하는 것이라서 오히려 집단 내부의 신뢰만을 구축하도록 할지 모릅니다. 일베 현상 말입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타인에 대한 신뢰를 창출할 수 있을까요? 정부가 정책을 통해 사회적 신뢰 수준을 더욱 높이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정부가 사회의 신뢰를 높이는 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신뢰가 높은 국가에서 정부가 제대로 일할 수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서로를 잘 믿는 나라일수록 부패가 심하지 않고 사법제도가 효율적이고 관료주의의 폐해가 덜 합니다. 또 부의 재분배가 잘 이뤄져 있고, 경제 개방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죠. 신뢰는 훌륭한 정부의 결과물라기보다는 훌륭한 정부를 만들어내는 원인입니다. 사법제도를 강회해서 일반적 신뢰를 상명하달로 주입하려는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갑니다.

기업에서도 각종 통제를 위한 시스템을 강화해서 신뢰하도록 만들려고 하는 시도는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타인을 신뢰하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신뢰도 일종의 기질입니다.


신뢰라는 기질 형성에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대체로 일반적 신뢰의 뿌리는 각자의 부모에서 나온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남을 믿거나 믿지 않는 성향은 어릴 때부터 길러지고 대부분 그때 결정되고 그후로 개인의 신뢰관은 좀처럼 변하지 않죠. 1965년부터 1982년까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17년간 진행된 연구가 이를 말해 줍니다. 1982년에 조사하니 응답자의 64퍼센트가 1965년과 동일한 신뢰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고등학생 때 부모가 친구 결정권을 인정해 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30대 중반이 되었을 때 타인을 신뢰할 가능성이 더 높았습니다.



출처: www.imediaconnection.com



정부가 정말 사회의 신뢰 향상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유일한 방법은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입니다. 국가가 평등할수록, 특히 경제적으로 평등할수록 사회적 신뢰수준은 높아진다고 하니 말입니다. 기업이라는 조직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문화에서는 신뢰가 뿌리 내리지 못한는데, 일종의 계급 분할이라는 엄격한 사회질서가 기업 내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죠. 신뢰하게 만들려면 먼저 수평적인 조직문화 구축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소득 격차를 줄이려고 해야 신뢰가 만들어지고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이루어집니다. 미국의 경우 소득격차가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됐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공동의 유대감을 느껴야 서로 신뢰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경제적 불평등 수준이 높아질수록 비관론이 증가하고 공동의 유대감이 점점 줄어들어서 신뢰가 감소하는 것이죠.


자기가 남보다 우월하다면 남을 믿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못 느낄 겁니다. 경제적인 서열화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경제적 서열이 낮은 사람을 믿을 필요가 없겠죠. 국가가 국민들의 일반적 신뢰를 높이고 싶다면 여러 정책을 쓰는 것보다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애쓰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입니다. 서로 믿으라는 외치는 캠페인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1960년 이탈리아는 경제적 불평등 수준은 높고 신뢰 수준은 낮았습니다. 1990년이 되면서 경제적 불평등 수준이 스웨덴 수준으로 떨어졌는데(즉 평등 수준이 높아졌는데) 이때 신뢰가 보통 수준으로 향상됐다고 합니다. 경제 성장이 신뢰를 높이는 게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 해소가 신뢰를 높입니다. 부유해지지 말고 공평해져야 신뢰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신뢰도 일종의 기질이고 성향이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기본적으로 일반적 신뢰감이 높은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일반적 신뢰 수준이 높은 사람을 뽑을까요? 완벽하지 않겠지만, 인터뷰를 통해 지원자가 ‘자기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지’ 봐야합니다. 기본적으로 미래에 대해 낙관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 위한 질문을 던져야 하죠. 또한, 어떤 사상이나 종교에 대해 근본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봐야 합니다. 근본주의자들은 개별적 신뢰를 고수할 가능성 높으니까 말입니다. 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부모가 자신을 어떻게 양육했는지 물어야 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부모의 양육 방식과 상호 관계는 자녀의 신뢰감에 간접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조직은 얼마나 서로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불신이 만연하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참고도서)

‘신뢰의 힘’, 에릭 M. 우슬러너 지음, 박수철 옮김, 오늘의책,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