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톤에서 워싱턴 D.C. 까지의 거리는 약 700 km로 자동차로 8~9시간 걸리는 구간입니다. 이 두 도시 사이에는 필라델피아, 뉴욕, 하트퍼드 등 비즈니스 중심지가 밀집되어 있기 때문에 사업상 필요에 의해 비즈니스맨들의 이동이 많습니다. 이 황금노선의 교통 수요를 차지하기 위해 AMTRAK(앰트랙)이라는 철도회사는 Acela(아셀라)라고 명명한 고속열차를 운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셀라는 우리나라의 KTX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시속 240 Km의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자동차로 8~9시간 걸리는 두 도시를 3시간 정도면 주파할 수 있었죠. 앰트랙의 최대 경쟁자는 항공사였습니다. 사람들의 니즈를 항공 서비스에서 자기네 아셀라로 유도하는 것이 사업 초기에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숙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셀라를 이용하는 것이 비용으로 보나 서비스로 보나 비행기보다 낫다는 점을 강조해오고 있죠.



공항까지 오고가는 택시비를 합치면 비행기를 이용하는 데에 총 729 달러가 들지만, 아셀라를 이용하면 택시비를 포함하여 338 달러 밖에 들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웁니다. 물론 비행기를 이용하면 (택시 이용시간까지 합쳐) 2시간 6분 밖에 들지 않지만,  1시간 정도를 절약하는 데에 400 달러 가까운 돈을 더 지불할 필요가 있는지 판단해보라고 고객에게 묻기도 합니다. 또한 객차와 역에서 비즈니스맨들에게 꼭 필요한 WiFi 서비스를 공짜로 제공함으로써 비행기와의 차별성을 가져갑니다.

이처럼 앰트랙은 자신들의 최대 경쟁자인 비행기를 이기기 위해서 초기부터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아셀라 만큼은 객차 내부의 디자인이 비행기를 능가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산업디자인 전문회사로 유명한 IDEO에게 객차 내부 디자인을 의뢰했습니다. IDEO의 CEO인 팀 브라운은 앰트랙의 의뢰를 받은 후에 아셀라의 객차 내부라는 '부분'이 아니라 아셀라를 이용하는 고객의 입장에서 '전체'를 조망했습니다. 그는 디자인팀에게 스스로 고객이 되어 아셀라의 서비스 전반을 검토하라고 지시내렸습니다. 그랬더니, 문제는 객차 내부가 아니었습니다.

고객들이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로 쏠리는 이유는 열차를 타기 위해 표를 구매하는 것이 불편하고 역에서 대기하는 시간도 지루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고객접점(Moment of Truth)에서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포인트가 거의 없었습니다. 고객으로 하여금 아셀라를 이용할 만한 이유를 부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객차 디자인을 '삐까뻔쩍'하게 한들 고객들의 발길을 아셀라로 돌리기가 역부족이라는 점을 브라운은 간파한 거죠.

그래서 IDEO는 앰트랙의 경영진을 설득해서 객차 내부 디자인보다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고 역제안합니다. 고객이 아셀라를 이용하기 위해서 역사에 들어서고 목적지에 도착하여 역사를 떠나기까지 일련의 고객 동선에 아셀라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을 '심어야' 한다는 점을 설득했고 경영진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그래서 IDEO는 매표소, 대합실, 고객 라운지, 플랫폼 등 모든 고객접점에 아셀라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내보이도록 로고, 직원들의 드레스 코드, 열차의 외관, 객차 내부 등을 일치시키는 '통합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죠.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통해 아셀라는 비행기와는 차별된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자리잡게 됩니다. IDEO의 강점은 이렇듯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조망할 줄 아는 데에 있습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볼 줄 아는 힘의 기저에는 단순화와 전문화를 경계하는 마인드가 숨어 있습니다. 팀 브라운이 문제를 단순화했다면 앰트랙의 요구대로 객차 내부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에 초점을 맞췄을 겁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디자인 수수료를 받으면 그만이었겠지만, 그랬다면 그들은 그저 그런 여러 디자인 회사 중 하나에 불과했을 겁니다.

"고객에게 높은 수수료를 받으려고 IDEO가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이 조직 내부의 문제를 풀 때 IDEO와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문제를 해결할 때 문제의 발생 원인이나 문제의 해법을 의도적으로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원들이 평가제도나 연봉에 불만이 많다면 인사제도를 정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고객이 경쟁사의 제품에 열광하면 성능이나 디자인을 획기적으로 개선함으로써 빼앗긴 고객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단순화하면, 직원들이 불만을 갖는 이유가 인사제도 때문이 아니라 회사에 출근해서 퇴근하기까지의 '직원 경험'이 직원들의 불쾌와 괴로움을 가중시킬지 모른다는 진짜 원인을 조망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고객들이 경쟁사에 매료되는 이유가 경쟁사로부터 느끼는 신뢰, 배려, 소속감 때문임을 간파하지 못합니다. 아니, 어쩌면 속으로 알고는 있으면서도 힘들고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까 단순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마치 도박하듯이 말입니다.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보고 단순한 해법으로 해결하려는 '단순화 경향'은 '전문화'라는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망치를 든 목수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한곳을 깊게 파고든 사람은 전체를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이 전문으로 하는 좁은 영역으로 현상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우를 종종 범합니다. 경쟁사에게 고객이 몰리는 현상을 접하면, R&D는 성능 혁신, 생산은 생산품질 개선, 영업은 프로모션의 확대 등을 각기 내세우면서 "이것만 하면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부분 최적화'가 심화되기도 하죠.

창의적인 해법은 문제나 현상의 복잡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얻을 수 있습니다. 문제 자체를 단순하게 재단하고 쪼갠다고 해서 문제가 단순해지지 않습니다. 전문화라는 색안경을 통해 의도적으로 단순화시킨 문제를 푸는 해법이 복잡했던 원래의 문제의 해법이 되지도 못합니다. 문제를 잘게 쪼개면 숲 전체를 보는 시각을 상실합니다. 앰트랙은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문제를 객차 내부 디자인의 문제로 단순화시켰지만 IDEO는 문제를 오히려 확장시키고 복잡하게 만듦으로써 궁극적이고 획기적인 해법을 찾아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문제에 처해 있더라도 문제 자체를 단순화시키려고 애쓰지 말기 바랍니다. 문제를 단순화시키려는 본능에 가까운 욕구를 절제하고 문제의 복잡성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오히려 키우려는 마인드,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시각을 확장시키려는 마인드, 이런 중용의 마인드가 여러분을 통찰로 이끄는 힘이 됩니다.

요즘 카이스트(KAIST) 문제로 시끌시끌합니다. 카이스트의 문제는 총장의 문제, 총장의 문제는 징벌적 등록금 문제, 징벌적 등록금 문제는 영어 강의 문제.... 이런 식으로 문제를 단순화시키면 정작 카이스트 전체의 문제를 놓칠 수 있습니다.

(*참고 사이트 : 앰트랙 홈페이지 )
(*참고 도서 : '생각이 차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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